누가복음 5:27~32절 말씀으로 구역예배를 준비하면서 깨닫게 된 내용이다. (내가 깨닫는 내용은 사실 정말 별 볼일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서 또 어쩌다가 블로그에 방문하는 사람을 위해서 남겨두는 것일 뿐이다.)
요즘 세무공무원도 마찬가지 이지만 그당시 사람들에게 거의 죄인취급을 받고 있던 세리 중 레위(마태)라는 사람을 예수님이 콜링하는 장면이다. 그때 레위는 세금 받는 곳에 있는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했다.
그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일어나 그분을 따르니라.(눅5:28)
그런데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랐다는 구절에서 너무 추상적으로 접근하여 가진 것을 모두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 때 세금을 걷는 자리에 있었기에 그런 일에서 떠나 예수님을 맞이 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왜냐면 자기 집에서 세리와 죄인들을 초대하였는데 모든 것을 버렸다면 자신의 집에 사람들을 초청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28절의 말씀 중 버려두고라는 단어를 더 정확한 단어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성구사전을 찾아보았다. 그 단어는 G2641(left, 카텔레이포)라는 단어가 KJV성경에서 leave라고 번역된 곳이 어디있는지 찾아보았더니 총 5개의 구절이 나왔고 3가지로 압축할 수 있었다.
1.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난다 - 결혼의 조건중 하나
2. 99마리의 양을 두고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다닌다. - 예수님의 비유
3. 말씀을 버려두고 상을 섬기는 것을 합당지 아니하다 - 사도들의 우선순위
이렇게 '버려두고'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카텔레이포는 다른 단어로도 번역된 것들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버려두다'는 뜻으로 한정한다.
위의 참고 구절 중 두번째 눅 15:4절에 있는 저 비유는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고 나도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항상 아흔아홉마리의 양에 대해서 조금 너무하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었다. 왜냐면 그 양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치 아버지의 재산을 다 써버려서 돌아온 탕자를 큰 잔치로 받아준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던 큰 아들의 마음처럼 말이다. 하지만 성경은 나에게 이 무지함을 다시 깨우쳐 준다.
너희 중의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가 그것들 중의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남겨 두고 잃어버린 것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눅15:4)
아흔 아홉마리를 푸른 초장에 두시는 것이 아니고 하필! 광야에 남겨놓으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얼마나 주님이 신경쓰고 계신지 알 수 있는 곳이다. 여기에서 양을 광야에 남겨두는 것이 실제 양치기가 왜 그렇게 하는지는 추가적으로 배워야 겠다.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이 4일간의 정탐을 다녀오고 난 후의 그 불신 때문에 40년을 광야생활 한 것 처럼. 예수님의 40일 광야 생활처럼, 구원받은 성도들도 필히 광야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양을 광야훈련학교에 입학을 시키고 구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급선무로 달려 가는 것이다. 광야에 있는 양은 특별훈련생들이다. 그 광야훈련을 잊지 말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