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렛폼에서 콘텐츠를 표현하는 기본 개념 인쇄술이 '선로'라면, '콘텐츠'는 기차다. 선로와 기차의 연결에 따라 종교개혁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성경 교육은 '스피치'로만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는다. '번역'은 우리를 성경으로 이끄는 콘텐츠의 핵심이다. 스피치에 집착할 때, 열차는 탈선할 수 있다. 그림과 음악, 문학 자체는 교회교육이 아니다. 셰익스피어 극장이 교회일 수도 없다. 르네상스 예술 자체가 종교개혁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반면, 성경을 가르친다고 하면서도 문자에 갇힐 수 있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번역이 필요하다. 스피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스피치가 성경을 전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번역된 콘텐츠라야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눈에 보이는 말씀'을 고안했다.
하나의 콘텐츠를 사용하더라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법칙이 있다. 콘텐츠를 채택하는 출발점은 교회의 필요성이다. 왜 필요한지, 그 '목적'을 설정해야 한다(why). 목적이 정해지면 '무엇'으로 가르칠지를 정한다(what). 이것이 끝이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소통할지가 콘텐츠의 완성이며, 번역이다(how). 이와 같은 과정으로 번역을 한다.
신앙의 본질을 가르치고 싶다면(why), 성경 자체, 혹은 사도신경을 사용할 수 있다(what). 중세 교회는 번역 없이 가르쳤다. 번역하기 위해서는 스피치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예술과 문학, 보이는 말씀이 콘텐츠가 되어야 한다.
박양규, <다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 2023 들음과 봄, P.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