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는 너무나 멋지다. "또 그분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왕국은 마치 어떤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리는 것과 같으니,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그 씨가 돋아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되는지 그가 알지 못하느니라.이는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기 때문이니, 처음에는 잎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다음에는 이삭 안에 알찬 곡식이라.그러나 열매가 맺히면 그가 즉시 낫을 대나니 이는 수확할 때가 이르렀기 때문이라, 하시더라.(막 4:26~29)
2.
여기서 구제주는 모든 것에 작용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인간은 가르침의 씨를 신실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그것들은 의식함이 없이 감추어진 씨앗 안에서 발아하고 여물어간다. 청소년을 가르치는 이들은 씨를 바르게 그의 마음 속에 뿌리고 하나님의 식물에 주의 깊게 물을 붓는 것 외에 다른 과제가 없다. 번성하고 성장하는 것은 위로부터 오게 될 것이다.
3.
가꾸기 위해 확실한 기술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는가? 정원을 가꾸는 경험이 없는 정원사는 가꾸기에 대부분 실패한다. 몇몇이 운 좋게도 성공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의 기술 때문이라기보다 우연에 더 기인한다. 하지만 전문가는 그가 어디에, 언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고 하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가꾸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그는 실패하는 경우가 없다. 물론 경험자에게도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왜냐하면 하나 또는 다른 실수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가 모든 것을 주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신중함과 우연에 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깊게 사고를 막는 것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4.
이제까지 수업방법은 한 사람도 감히 다음과 같이 말하지 못할 정도로 확실하였다. 즉 나는 소년을 그렇게 여러 해 동안 그 쪽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교육할 것이라는 등등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정신적 이식의 기술이 안전하고 실수가 없는 성공을 약속하는 그러한 확고한 토대 위에 세워질 수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5.
이러한 토대는 우리가 기술 행위를 가능한 정확하게 자연과정의 규범에 맞춘다는 사실에 기인할 수 있기 때문에(제 14장에서 이미 살펴본 것처럼), 우리는 새끼들을 부화하는 새를 예로 자연의 방법을 연구하고자 한다. 정원사, 화가, 건축사가 어떻게 성공적으로 그의 발자취를 추종하는지 우리가 볼 때, 청소년의 교육자가 어떤 방법들을 제시하는지 쉽게 파악하게 될 것이다.
6.
만약 어떤 사람이 이러한 예들을 너무 잘 알려진 일상적인 것이라서 무익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즉 자연과 기술에서(학교에서만은 아니다) 좋은 성공을 거둔 알려진 일생의 과정으로부터 우리가 목표로 삼았던 덜 알려진 과정을 추출해 내기 위하여 이러한 예들을 끌어왔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규정들을 위해 생각을 끌어왔던 그 부분이 이와 같이 알려진다면, 우리의 결론적 추론들이 그만큼 더 분명해지게 될 것이다.
_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 저, 정일웅 역, <대교수학 4쇄, 창지사> 165~16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