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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새로운 도전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히사이시 조)

https://www.melon.com/musicstory/detail.htm?mstorySeq=10063

 21세기인 지금, 뒤를 돌아보면 20세기는 리듬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의 가장 상징적인 음악은 팝이다. 이제 팝은 완전히 세계 공통의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실제로 팝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팝이 베이스 기타와 드럼, 피아노로 이루어지는 음악이란 관점에서 보면 팝의 역사는 고작해야 80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팝은 어떻게 이토록 짧은 시간에 세계를 석권하고 길거리를 장악하게 되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리듬이다. 

클래식은 끊임없이 형식이 바뀌는 가운데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더욱 복잡해졌다. 20세기 초반까지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1940년에서 1950년 사이에 리듬을 잃어버렸다. 불협화음이 많아지고 소리의 구성이 복잡해지면서 악보는 새카매졌다. 전문가의 해석을 들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음악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실체를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으리라. 원래 논리가 비대해지만 실질은 빈약해지게 마련이다. 그때 현대음악 안에서 내가 예전에 했던 미니멀 뮤직의 흐름이 나타났지만, 그 이야기는 일단 차치해 두자.

  20세기는 팝의 시대이고, 그것은 곧 리듬의 시대였다. 20세기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리듬이다. 그리고 그 리듬의 원천은 흑인이 바다를 건넌 것에서 기인한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아프리카 흑인들은 노예로 미국에 건너가게 된다. 상아해안Ivory Coast에서 뉴올리언스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그 흑인 노예들의 음악과 백인들의 음악이 수많은 알력 속에서 뒤엉키며 재즈가 태어나게 된다. 닥시랜드 스타일Dixieland style(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뉴올리언스에서 생긴 가장 초기의 재즈)에서 점차 정통 재즈 스타일로 발전해 나간 것이다. 또한 아프리카 흑인들이 중남미로 건너가 황색인종과 관계를 맺으면서 라틴음악이 태어났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강렬한 리듬이 전면에 등장함으로써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음악이 태어난 것이다. 

 리듬을 잃어버린 클래식이 사랆들의 시선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리듬을 전면에 내세운 재즈를 경유한 팝은 외우기 쉬운 멜로디와 함께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단숨에 세계를 석권한 것이다. 
 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존재한다. 학창시절에 배운 클래식의 연장으로 한 때 미니멀 뮤직을 추구했지만, 그곳에서 모순을 느낀 이후에는 철저하게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해왔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음악활동을 해나가야 할까? 한 사람의 작곡가로서 음악과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할까? 요즘 들어 이런 고민이 나의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다. 

 미국 필립 그라스Philip Glass라는 작곡가가 있다. 미니멀 뮤직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으로, 자기 작품을 만들면서 동시에 영화음악도 만들고 있다. 대단히 명쾌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인 그는 기본적으로  미니멀 뮤직을 하면서 새로운 음악을 모색하고 있다. 
 영국에 마이클 니만Michael Nydman이라는 작곡가가 있다. 그는 원래 조형예술에 사용하던 미니멀이라는 단어를 음악에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이다. 그도 자기 작품을 만들면서 영화음악을 만들고 있다. 제인 캠피온Jane Campion 감독의 <피아노> 영화음악이 그의 작품이다. 

 일본에서 미니멀 뮤직을 하던 나 역시 영화음악을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현대 클래식 작품을 만들지 않았다. 물론 내가 만든 음악 여기저기에는 미니멀 뮤직의 느낌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한 사람의 작곡가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것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2006년, 나는 < Asian Crisis>란 곡을 만들었다. 그 곡은 당시의 내 심경을 반영한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이었다. 
 미니멀 뮤직에서 엔터테인먼트 음악으로 전환한 20대 시절, 나는 거의 피아노를 이용해서 곡을 만들고 악보를 그렸다. 그런데 <바람의 계곡의 나우시카>의 음악을 만들 때, 페어라이트fairlight라는 기계를 처음 알게 되었다. 
...

 작곡가의 일은 악보를 쓰는 것이 아니다. 악보는 음악을 만드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즉 악보가 없어도 얼마든지 음악작업을 할 수 있다. 

 그 이후점점 기계가 발달하면서 녹음 방법을 포함해 기술적인 부분이 많이 바뀌었다. 누구나 기계에 곡을 입력할 수 있고, 더구나 기계 가격도 저렴해졌다. 심지어 수만 엔 정도의 기계를 이용해 집에서 간단한 작업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녹음 스튜디오를 사용할 필요도 없어졌다. 그 결과 사운드가 모두 비슷해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작곡가로서 다시 악보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녹음도 기계로 소리를 만드는 스튜디오 작업에서 탈피해 공연장에서 생생한 오케스트라 소리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 이것이 지금의 내 방식이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싶어진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악보이다. 나는 마치 대학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클래식 악보를 볼 기회가 늘어났다. 그러자 예전에 보지 못했던 소리의 구성이나 의미를 알게 되었따. 그것은 10대에 읽는 셰익스피어와 50대에 읽는 셰익스피어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역시 평생을 클래식에 바친 작곡가의 악보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훌륭하다. 그들은 악기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스트라빈스키Igor Fyodorovich Stravinsky, 버르토크, 말라Gustav Mahler 등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보내도 부족할 지경이다. 그들에 뒤지지 않을 만큼 악보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 지금의 내 꿈이다. 

 최근 들어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자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히사이시조 | 이선희 옮김,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 2023년 9쇄>, 샘터, P.133~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