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 항해에서 나의 위치는?
1707년 10월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에 참전한 영국 해군 함대가 지브롤터해협에서 프랑스와의 교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영국 남부의 군항 포츠머스로 귀환하다가 몰사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며칠째 계속된 짙은 안개로 항로를 잃은 네 척의 함대가 영국 서남단 실리제도 암초에 부딪혀 침몰한 것입니다. 승선인원 2,000여 명 중 살아남은 선원은 2명뿐이었습니다. 이 비극적 사고의 원인은 경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려면 두 종류의 위치정보가 필수입니다. 목적지와 내 배의 현재 위치입니다. 현재 위치는 위도와 경도를 알아야 하는데, 위도는 태양의 움직임을 통해 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18세기 초반만 해도 해상에서 경도는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참사를 계기로 영국 의회는 1714년 경도법 Act of Longitude을 제정했습니다. 바다에서 경도를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에게 최고 2만 파운드(현재 수십억 원 상당)의 상금을 주기로 한 법입니다. 경도 측정에는 아이작 뉴턴과 갈릴레오 갈릴레이 Gelileo Galiei 등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도 뛰어들었지만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예상을 깨고 존 해리슨 John Garrisondl이라는 무명의 시계기술자가 오랜 연구 끝에 '크로노미터 H4'라는 정교한 해상시계를 개발해 경도법 상금의 주인공이 되고, 해상에서 정확한 경도 측정의 시대가 열립니다.
적도를 기준으로 하는 위도와 달리, 경도는 자연적으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국가들이 두루 수용하는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데, 당시 천문학자들에 의해 그리니치천문대를 통과하는 가상의 선이 경도 값 0으로 채택되어 세계 시간의 기준점인 본초자오선이 되었습니다. 경도 발견에 가장 많은 기여와 노력을 기울인 여국이 세계 경도의 기준점이 된 것입니다.
바다에서 정확한 배의 위치를 알려주는 경도 값은 제해권을 장악하는 정보이자 권력입니다. 영국이 정확한 경도 파악을 위해 그리니치천문대와 경도법 등에 쏟은 투자와 노력은 영국 해군을 세계 최강으로 만들었습니다. 즉 대영제국을 가능하게 한 제해권의 출발점은 경도 측정기술의 연구와 개발, 달리 말하면 "나의 현재 위치가 어디인가"를 정확하게 아는 능력이었습니다.
공부도 망망대해에서의 항해와 비슷합니다. 위도 값이 있지만 경도 값은 없는 상태입니다. 무엇을 목표로 삼고 어떻게 배워야 할지 막막하고 불안합니다.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지만, 현재와 다르리라는 것과 지금의 방법이 통용되지 않으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길을 잃어버렸는데 목적지는 알 수 없고 부정확한 지도를 갖고 있는 형국입니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었을 때 헤쳐나가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모든 길 찾기와 탐험에서 출발점은 현재 위치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어떤 조건에 처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모든 것에 앞섭니다.
구본권, <공부의 미래>, P. 243~245
공부를 위해서 나의 위치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를 전달하기에 아주 좋은 예화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에 나오는 EBS '0.1% 비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그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아는 것'이었다. 나도 마찬가지고 자식에게도 이런 중요한 원리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