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메니우스 | 라바디 |
프랑케 |
그는 현재의 비참한 사회현실을 분석하면서, 그 근본원인을 가르치는 계층의 문제로 본다. 그가 사회개혁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젊은이들의 교육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프랑케만의 것이 아니라 17세기 교회와 대학교육의 비판의 전통 속에 서 있는 것이다. 프랑케가 [대 논문]에서 직접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체코의 교육자인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Johann Amos Comenius)의 영향력을 감지할 수 있다. 이들과 다른 점은 프랑케가 할레대학과 '프랑케 슈티프퉁'을 통해 직접 이러한 이상을 구체적으로 실천하였다는 데 있다.
_이성덕, 경건과 실천 독일 경건주의와 A. H. 프랑케 연구, 2009.12.28 초판 133p.
그의 생애 말년에 코메니우스는 라바디(Jean de Labadie, 1610~1674)를 중심으로 한, 초기 경건주의 단체에 영향을 주었는데, 라바디는 이전에 프랑스 예수회 회원이었고, 하나님의 영을 통한 내면의 계몽을 강조했다.
많은 신학자들은 특히 그의 두드러진 계시 신앙과 종말 신앙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경건주의는 코메니우스의 신학을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물론 [경건주의자들이] 그의 작품의 신비적, 과조적, 성경 중심적인 측면에만 주로 집중하긴 했지만 말이다. 할레의 경건주의 덕분에 그의 주요 작품인 <포괄적인 제언>이 보존될 수 있었다.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August Hermann Francke, 1663~1727)는 이 작품을 출판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단지 첫 권인 <범 각성론>만 출간했다.
_파이트 야코부스 디터리히, 최진경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