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귀'를 이용한다.
라틴어를 예로 들어보자. 라틴어는 기본 교과목이자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언어다. 라틴어를 배우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쉽다. 하지만 학생들은 대부분 라틴어를 싫어한다. 라틴어의 기초가 튼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아들이 요람을 탈 때부터 기초적인 라틴어를 가르쳤다.
물론 사람들 중에는 먹고 자기만 하는 아기에게 라틴어를 가르치는 게 가능하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능하다. 아기는 눈보다 귀를 더 잘 사용해서 그저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 나도 이 방법을 이용해서 아들에게 라틴어를 가르쳤다. 칼이 잠에서 깨어나 기분이 좋았을 때 난 편안한 목소리로 아들에게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들려줬다. 이것은 훌륭한 서사시요, 최고의 자장가로, 아들이 매우 좋아하고 들으면서 잠들 때가 많았다. 이렇게 기초를 쌓은 아들은 나중에 라틴어를 배울 때 어려워하지 않고 쉽게 <아이네이스>를 외웠다.
표와 규칙을 이용한 기계적인 방법으로는 학생들이 라틴어를 즐겁게 배울 수 없다. 또한 배운다고 해도 읽기만 할뿐 자유롭게 말하진 못한다. 칼이 아홉 살 때 라틴어 교사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교사는 라틴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2. 암기보다는 훈련
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아들에게 어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가르친다한들 어린 아들이 이해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어법을 토대로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이지만 아이들은 그보다 모국어를 배울 때처럼 '훈련'시키는 것이 더 낫다.
대중적이고 이해하기 쉬는 시는 그만큼 기억하기도 쉬워서 주로 시를 이용해서 아들의 언어감각을 키우고, 어느 정도 기초를 다진 뒤에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게 했다. 아들과 외국어로 대화할 때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은 배운 단어를 모두 활용해서 우회적으로라도 표현하게 했지 결코 독일어로 말하게 하지 않았다. 또한 외국 서적을 많이 읽게 했는데, 책을 읽는 것은 언어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모든 언어의 정수는 책 속에 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땐 사전을 찾으면 된다. 처음에는 사전을 달고 살던 아이가 점차 사전을 덜 찾으면 그만큼 실렦이 많이 늘었다는 뜻이다.
칼은 외국 친구와도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리스어를 배울 때 칼은 그리스 친구에게 편지를 보낸 뒤에 답장을 받고는 매우 기뻐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칼은 그리스 문학에 관심을 갖고 많은 문학작품을 읽었다. 훗날 칼은 이탈리아, 영국의 친구와도 펜팔을 했는데 편지를 주고받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외국어 실력도 일취월장하고 그 나라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나중에는 언어 외에 지리와 생활습관도 연구하게 되었다.
3. 같은 이야기를 여러 언어로 읽는다.
사람들은 보통 한번 읽은 책은 다시 안 읽는 경향이 있는데 칼은 같은 이야기도 지루해하지 않고 여러 번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난 외국어를 가르칠 때도 칼이 같은 책을 여러 나라 언어로 읽게 했다. 요컨대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라틴어, 영어, 그리스어로 안데르센 동화를 읽게 했다. 이렇게 해서 칼은 재미있고 쉽게 외국어를 배웠다.
4. 어원을 파악한다
어원을 파악하는 것은 외국어 공부에 도움이 된다. 난 칼이 어릴 때부터 어원을 파악하는 습관을 들이게 하기 위해서 어떤 라틴어 단어를 공부할 때 현대어 중에서 이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가 없는지 알아보고 있으면 모두 노트에 기록하게 했다. 이렇게 하면 단어를 기억하기도 쉽거니와 그것에서 파생된 단어도 같이 공부하고 언어 발달의 규칙을 알 수 있어 일석 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5.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게임형식이다
아이가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부모가 어떤 학습방법을 취하느냐에 달려있다. 내가 직접 아들을 키워본 경험으로는 게임형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칼이 막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난 13개국 언어로 아침 인사를 가르쳤는데 매우 재미있어하고 빨리 배웠다. 난 아이들과 장난감과 인형을 좋아하는 점을 이용해서 매일 아침마다 칼이 각 나라를 대표하는 열세 개의 인형을 들고 "좋은 아침이에요"라고 말하며 인사하게 했다. 이런 식으로 우리 부자는 각종 언어로 책을 읽고 노래를 불렀으며 수수께끼 놀이, 문장 만들기, 속담 맞추기, 이야기 짓기 등의 게임을 했다. 공부방법이 재미있어서인지 칼은 투정 부리지 않고 즐겁게 외국어를 배웠다.
6. 글자를 가르친다
아이는 뭐든지 어른을 따라하기 좋아하는데 칼이 내 흉내를 내며 펜을 들고 글씨 쓰는 시늉을 하기에 난 이때다 싶어 칼에게 글자를 가르쳤다. 칼이 처음 글자를 배우고 싶어 했던 것은 네 살 때였다.
어느 날 서재에서 혼자 일하는데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졌다. 뒤돌아보니 칼이었다. 칼은 나를 등진 채 작은 의자에 엎드려 뭔가를 정신없이 짜 맞추고 있었다. 그 순간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평소 온 집안을 소란스럽게 뛰어다니느라 바쁜 아이가 대체 무러 하기에 이렇게 조용히 있을까?
난 궁금한 마음에 살금살금 칼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랬더니 칼이 못 쓰는 종이에 글자 카드를 보며 글쓰기 연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건 너무나도 놀랍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칼, 글씨 배우고 싶니?"
"네."
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빠한테 말하지. 아빠가 가르쳐줄 텐데."
난 얼른 연필 한 자루를 칼의 손에 쥐어주고 이름 쓰는 법을 가르쳤다. 칼은 처음에 연필도 제대로 못 쥐고 한 획도 쓰기 버거워했지만 나의 격려를 받으며 포기하지 않은 결과 마침내 삐뚤빼뚤하게나마 자신의 이름을 쓰는 데 성공했다.
칼은 자기가 보기에 글자를 잘 쓴 것 같으면 우리 부부에게 보여줬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방금 막 글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가 글자를 잘 쓰면 얼마나 잘 쓰겠는가? 하지만 아내는 이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고 놀라는 척하며 "우리 칼이 글자를 쓰다니,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칭찬했다. 엄마의 칭찬은 글자를 쓰려는 칼의 의욕을 더 불태웠다.
그 며칠간 글자를 쓰려는 의지가 대단해서 칼은 아는 글자를 부지런히 연습하고 내게 더 많은 글자를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또 연필 대신 펜을 달라고도 했는데 내가 글씨 쓸때 펜으로 쓴 것을 본 것이다.
칼은 내 모습을 따라하며 하루 빨리 글자 쓰는 법을 배우고 싶어 했다. 비록 연필보다 펜으로 쓰는 것이 더 어렵지만 난 칼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서 펜을 줬다. 툭하면 칼이 잉크병을 쏟아서 얼굴과 손에 묻히고 돌아다니는 바람에 일일이 쫓아다니며 뒤치다꺼리를 해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칼에게서 펜을 빼앗진 않았다. 칼은 며칠간의 노력 끝에 마침내 펜을 바르게 잡고 글자를 예쁘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칼비테, 김락준 번역, <칼 비테의 자녀 교육법> P.125~137
"코메니우스 이외의 가장 강력한 교육법 책이라면 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지혜롭고 지식이 충만한 아버지가 있었기에 이런 교육법과 책이 나왔다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자식을 사랑하고 지혜롭게 키우는 그의 방법에는 배울점들이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나의 한계도 알아간다."